의학칼럼 ‘치료를 넘어 치유를 꿈꾸다’

이경미(KBS1 TV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출연 화면)

이경미(李京美/Dr. Lee Kyungmi)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통합의학 전문의
웰니스 파트너 BMBL 대표
http://www.bmblpartners.com/

家庭医学科专门医师
C.E.O at MediSolution, Board of Family medicine

저서 : 보건복지부 선정 우수건강도서 ‘내 몸은 치유되지 않았다“(2015. 북뱅)

 

 

무심코 하는 선택에 숨어 있는 넛지 - 이경미의 의학칼럼⑨

작성자
이경미
작성일
2016-01-15 21:07
조회
39209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지인 덕분에 아이와 함께 처음 와보는 밴쿠버.

유명 관광지 곳곳을 찍고 돌아다니는 여행보다는 캐나다 밴쿠버 사람들의 일상이 어떤지 천천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운타운이 아닌 코퀴틀람이라는 밴쿠버 외곽의 작은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캐나다하면 역시 겨울 스포츠!

사회복지 서비스가 발달해 있는 캐나다는 커뮤니티 센터에서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커뮤니티 센터들의 프로그램 정보를 뒤적거려서 매일 하루 두 시간 정도 일반 시민에게 오픈되는 아이스링크의 개장 시간에 맞추어 내 생애 첫 아이스 스케이팅에 도전해 보았다. 아이가 스케이트를 좋아해서 1년 여 넘게 눈으로 보다 보니 나름 이론적으로는 스케이트를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머리로 배운 것과 몸으로 배우는 것은 다르다.

 

“ 자, 지금부터 모두들 반대 방향으로 도세요~! ”


평범한 일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만은 매우 인상적이었던 광경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한국에서는 스케이트장에서 모두들 시계 반대 방향으로 큰 원을 그리며 스케이트를 탄다. 서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스케이트를 타면 부딪힐 위험이 크기에 모두들 한 방향으로 타는 것이다.

그렇다면 캐나다는 다를까?

아니다. 같다. 여기도 물론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탄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스케이트를 탔더니 누군가 “ 자, 지금부터 모두들 반대 방향으로 도세요!"라고 외치고 다들 일사 분란하게 방향을 바꾸어서 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가 1년 동안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줄기차게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봐 오면서 의사의 입장에서 아이의 좌 우 몸 근육이 비대칭으로 발달하지는 않을까 고민이 됐었던 나는 순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강을 통합적으로 보는 입장에서 전체 몸의 균형은 매우 중요하기에 운동 중에서 스케이트만 좋아하는 아이를 스케이트를 계속 타게 해야 하나 마나, 어떤 방법으로 이것을 해결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니...

그렇다! 운동 시간 중 반 반씩 나눠서 다른 방향으로 돌도록 하는 간단한 조치만으로 몸의 비대칭 발달도 예방할 수 있고 균형 감각도 고르게 더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쪽의 근육 운동을 한다든지, 근육을 풀어주는 별도의 운동을 한다든지, 맛사지로 풀어준다든지... 뭐 이런 저런 복잡한 추가적인 조치를 할 것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한번 더 돌게하는, 이토록 간단한 조치 하나로 얻게 되는 이득은 너무나 큰 것이다!!

 

얼마나 간단하고, 번거롭지 않고, 그러면서 효과는 큰 방법인가!

 

의식하지 못 하는 사이에 나의 선택을 유도하는 장치, 넛지(Nudge )


이전에 크게 유행했었던 베스트 셀러 책 중에 넛지( Nudge )라는 책이 있다.

넛지의 사전적 의미는 ‘ ( 팔꿈치로 ) 슬쩍 치기, 가볍게 찌르기’로 강제로 무언가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슬쩍, 가볍게 자극해서 어떠한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행동 심리학적 용어로 사용된다.

넛지는 강제성 없이 어떤 방향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가벼운 장치이다. 예를 들어 기계를 새로 셋팅할 때 디폴트 값을 설정해 주면 기계를 잘 몰라서 엉뚱한 설정을 하는 상황을 피하고 누구나 기본적인 셋팅은 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넛지라고 할 수 있다.

 

스케이트를 타던 사람들은 왜 반대 방향으로 도는지 인식을 못 하더라도 스케이트장의 외침에 따라 양 방향으로 스케이트를 타게 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의 균형적인 발달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스케이트장의 외침은 일종의 넛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습관의 무서움이란..오래된 습관처럼 ‘식습관과 관련된 넛지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 일상 생활 속에서 식습관과 관련해 특정한 선택을 하게 유도하는 숨어있는 장치들은 무엇이 있을지 한 번 삶을 되돌아 보자.

우선, 건강한 식습관을 저해하는 넛지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얼른 떠오른 것이 마트에서의 묶음 판매이다.

원 플러스 원 묶음으로 판매해서 가격을 약간 할인하면 사람들은 낱개보다 묶음 상품을 산다. 실제적으로 하나만 사면 더 적은 돈을 쓰고, 할인이 됐더라도 묶음 상품을 사면 전체적으로 쓰는 돈은 더 많게 되지만 묶음 상품 속 낱개 상품의 가격은 더 저렴하다는 생각에 불필요한 두 세 개를 더 사게 된다. 그리고 냉장고에 오랫 동안 넣어 두어 신선하지 않은 식품을 먹거나 아니면 결국 마지막 종착역은 쓰레기통이 된다.

식당마다 있는 어린이 메뉴도 일종의 넛지가 아닐까 한다.

어린이 메뉴가 따로 없다면 아이들은 어른들과 같은 음식을 소량으로 먹으면 된다. 그러나 어린이 메뉴가 있을 경우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어린이 메뉴를 주문하게 된다. 그런데 어린이 메뉴란 대부분 고칼로리, 고지방, 고당분의 가공식품으로 되어 있어서 어린이 메뉴를 주문하면 자동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 건강한 음식을 주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아이들이 찾는 식품들에 건강에는 좋지 않더라도 색소로 알록 달록 색을 입히는 것도 시각적인 호기심을 자극해서 자신도 모르게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식품 구입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종의 넛지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어가도록 하는 넛지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

공공 장소와 직장에 도시락 먹을 장소를 만들어 주는 것도 일종의 넛지가 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맵고 짠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먹을 것을 싸 오는 건강한 문화가 형성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도시락 먹을 장소가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는데 앞으로 곳곳에 ‘외부 음식 반입 금지’ 표지판이 줄어 들고 도시락을 먹을 장소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직원 식당의 메뉴를 건강하게 바꾸는 것도 해당될 수 있다. 체중계로 유명한 일본의 타니타 사에서는 보다 포괄적인 헬스 산업으로 전환하려는 비전 하에 직원들의 건강부터 관리하기로 하고 직원 식당의 메뉴를 건강 식단으로 바꾸었다. 그 후 직원들의 체중이 줄고 고혈압, 당뇨 환자인 직원들의 건강이 개선되면서 타니타 회사의 직원만이 아니라 외부인들도 직원 식당을 찾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이 직원 식당의 메뉴는 ‘타니타 레시피’라 하여 베스트 셀러 책으로 탄생하였다. 이 회사에 다니며 직원 식당 밥을 먹는 것만으로 건강한 식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건강 식단을 맛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건강식이라면 일단 맛이 없다는 편견을 갖는데 건강 식단을 맛있게 제공함으로써 직원 식당 밥이 맛이 없어 외식을 하던 직원들이 직원 식당을 애용하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였고 이 어렵지 않은 선택을 통해 건강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직원의 건강이 기업의 창조성과 성과를 위해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직원 식당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훌륭한 넛지인가.

 

이렇듯 일상 생활 속에 넛지는 이 곳 저 곳에 숨어 있다.

여러 가지 식품 마케팅 홍보 기법에는 선택과 소비를 부추기는 수많은 넛지들이 숨어 있는데 회사의 이윤을 위해서는 도움이 될지라도 소비자 건강의 측면에서는 해로울 수 있다. 현명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을 조장하는 숨어 있는 넛지에 속지 않고 자신과 가족의 삶에 건강한 식습관을 위한 넛지를 새로이 만들어내는 창조성을 발휘해보면 어떨까?

앞으로 사회 곳곳에 건강한 식습관을 위한 넛지들이 더 많이 개발되어 힘들이지 않고 무심코 하는 선택들이 건강과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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