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치료를 넘어 치유를 꿈꾸다’

이경미(KBS1 TV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출연 화면)

이경미(李京美/Dr. Lee Kyungmi)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통합의학 전문의
웰니스 파트너 BMBL 대표
http://www.bmblpartners.com/

家庭医学科专门医师
C.E.O at MediSolution, Board of Family medicine

저서 : 보건복지부 선정 우수건강도서 ‘내 몸은 치유되지 않았다“(2015. 북뱅)

 

 

아무리 좋은 것도... 무조건 따라하지 말고 내 몸의 신호를 들어야 - 이경미의 의학칼럼⑪

작성자
이경미
작성일
2016-02-21 17:14
조회
32113

무엇보다도 해를 입히지 마라 ( First, Do No Harm. )


 

지난 달에 전라남도 장흥에서 열리는 통합의학박람회를 다녀왔다.

흔히들 통합의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낯설게 생각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통합의학은 이제 큰 흐름이 되고 있다. 요즘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통섭’이라는 주제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처럼, 의학이라는 영역에서도 생화학을 기반으로 한 현대 의학에 과학적 검증을 거친 대체의학적인 요법들을 받아들여 개개인에게 최선의 솔루션을 제시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다.

수학에서 잘게 쪼개는 미분을 한 후에 결국 다시 적분을 통해 면적과 부피를 측정하는 것처럼 의학을 포함한 과학의 영역은 그동안 전문화, 세분화의 과정을 거쳐 미분의 극한에 도달한 것 같다. 그 결과 성과 못지 않게 다양한 부작용을 경험한 끝에 쪼개져 있던 영역들을 다시 합치는 통합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의학은 단순히 합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측면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신체적인 질환만을 바라보지 않고 인간 전체를 봐야한다는 것이며 자연적인 치료법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히포크라테스는 “First, Do No Harm.(무엇보다도, 해를 입히지 마라)” 이라며 효과적인 치료 이전에 안전한 치료가 더 중요함을 강조했다. 무언가를 함에 있어 해가 득보다 크다면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누군가를 치료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치료 전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행위가 혹시나 환자에게 해를 주지는 않는지 항상 주의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치료도 환자의 내면에 있는 자연치유력을 키워 스스로 병을 극복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는 없기에, 외부에서 약이든 수술이든 무언가를 더 해 주는 것이 혹시라도 자연치유력에 해를 끼칠 수 있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전히 통제하고 완벽하게 낫게 만들기 어려우니 누군가를 치료하려는 사람은 늘 겸손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을 보아야하는 이유


 

서울대학교 치유과학센터와 함께 통합의학 박람회장에 설치된 5개의 분야 중에서 자연치유관이라는 테마관을 1주일간 맡게 되었다. 서양의학을 전공하고 통합의학을 추구하는 네 명의 의사들이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해독, 몸을 바로 세우는 운동, 음식 치료 등의 주제를 맡아 하루씩 담당하기로 하였고 나는 그 중 음식 치료를 중심으로 통합의학적 평가와 처방, 교육을 진행했다. 하룻동안 40여명의 환자분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면서 인상 깊었던 사례들을 앞으로 하나씩 소개해볼까 한다.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위를 서성이던 한 할아버님이 무언가 말씀하실 듯, 하실 듯하면서 내 주변을 맴도시길래 ‘편하게 하시고 싶은 말씀 다 하세요’ 라며 운을 띄워봤다. 안 여쭤봤으면 죄송했을 정도로 ‘ 물은 언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 소화가 잘 안 되는데 왜 그러냐’ ‘ 은행은 몇 개를 먹어야 되는 건가’ 등 등 82세 할아버지의 진지한 질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렇게 지면에 옮겨 놓으니 ‘별 문제 아닌 걸로 뭘 이렇게 고민하시나’라고 넘겨도 되는 내용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분 자신에게만은 꼬깃꼬깃 품 속 깊이 접어 놓은 지폐 조각처럼 남들에게 말은 못 하고 늘 혼자 간직해오던 문제임에는 틀림 없었다. 나 역시 진지해진다.

 

물은 원하시는 때 드시면 된다고 말씀드리니 무언가 개운치 않은 표정이시다. 식사 중이나 식사 전 한 두 시간 이내에 물을 드시면 위액을 희석시켜 소화가 잘 안 될 수 있으니 이왕이면 그때는 피하시라고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니 어르신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르신의 질문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드셨는지 좀더 적극적으로 본인의 증세에 대해 말씀을 하신다.

이것 저것 여쭤보다 보니 어르신은 아침에 찬 물을 먹는 게 좋다고 해서 따라하기 시작하셨고 소화가 더 안 되는 것도 새로운 습관을 시작한 시기와 비슷했다. 왜 이렇게 물 드시는 데 집착하시나 질문을 이어가다 보니 ‘그러고 보니 물을 마시면서 소화가 잘 안 된 것 같다’며 스스로 답을 찾으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이번엔 소화가 잘 안 된다는 어르신의 증세에 대해 꼬치 꼬치 여쭤 보니, 현미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최근에 식사 때마다 100% 현미로된 밥을 드시고 계셨다.

 

현미밥 붐이 일면서 현미를 드시는 분들이 많다. 현미의 장점만을 얘기하라고 하면 아마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수두룩하리라 생각한다.

섬유소와 미네랄, 비타민과 필수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는 껍질과 씨눈을 제거해버린 백미보다 껍질을 살려둔 현미가 영양소 면에서 우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미의 성분 중 파이틱산은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의 흡수를 막는다. 현미는 장 안에 있는 찌꺼기들을 쓸어내어 청소하는 기능이 크기에 과식과 가공식품 섭취로 쉴 틈이 없는 현대인의 장 건강을 도와주는 기특한 식품이기도 하지만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소화가 잘 안 되는 고령의 어르신, 성장기의 어린이들 중 특히 마른 경우에는 현미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백미와 섞던가, 일부 껍질을 깎아낸 오분도미, 칠분도미를 활용하던가, 현미를 발아 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음식만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의 상태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약이 모든 사람에게 약이 아닌 것처럼 음식도 좋다는 것을 꾸역꾸역 따라 먹는 것이 건강을 위한 답은 아니다. 통합의학박람회에서 바짝 마르신 몸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좋다는 말을 따라 현미를 드시며 소화가 안 된다고 호소하시는 수많은 어르신들을 보니 그동안 통곡을 먹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해왔던 나의 말과 글이 살짝 미안해질 정도였다.

 

 

결국 문제점도 해결책도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위벽의 점막이 위축되고 위산 분비가 줄어드는 등 소화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위산이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활성화하기 때문에 나이가 듦에 따라 위산이 적게 분비되면 이전과 같은 양의 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하며 육류를 섭취했을 때는 이러한 증상이 더 심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를 일반적으로 노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로 하는 열량이 줄어들기에 적게 먹어야 하는데, 소화 기능이 감소하는 것은 노화가 아니라 이러한 생리적 변화에 맞춘 우리 몸의 지혜로운 적응 현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닐까? 우리 몸은 이렇게 지혜롭게 적응하는데 식습관은 변화가 없기에 현대인의 속은 늘 답답하고 쓰린 것이다.

 

다행히도 이 분은 자신이 보내는 몸의 신호를 너무도 잘 듣고 계셨다. 아침에 물을 마시니까 좋지 않더라, 현미만 먹으니 속이 불편하다 등 자신의 몸의 소리를 정확히 듣고 계셨지만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어 무엇이 맞는 것인지, 스스로 느끼고 있는 증상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문득 세상에서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목표와 조건들을 채우기 위해, 왠지 아닌 것같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곤 하는 우리의 모습이 살짝 겹쳐진다.

 

현미의 영양소만을 생각한다면 가장 우수하다 말할 수 있지만 현미라는 식품이 아니라 그것을 먹고 소화하고 흡수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답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몸의 소리를 들어라. 그것을 기준으로 좋다는 것들을 융통성 있게 수용하라. 아무리 좋은 것도 자신의 몸의 신호를 들으며 취사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 중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이다. 가령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푸는 것은 스트레스라는 정신적 피로 상태를 ‘배가 고프다’는 신호로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건강을 위한 첫 걸음은 건강을 위한 수많은 법칙들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떠한 지 일단 되돌아보는 것이다.

Listen to your body

일반적인 병원 진료였다면 소화 불량을 호소하는 고령의 환자일 경우 위중한 질환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위내시경을 진행해야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위내시경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괜찮다며 필요에 따라 소화제를 처방하고 환자를 돌려보냈을 것이다.

통합의학박람회라는 곳이 위내시경을 할 수 없는 환경이기도 했지만 설사 가능한 환경이었다 하더라도 위내시경 전에 이 분의 삶이 어떠한 지를 먼저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내시경에서 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식습관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주지 않는다면 환자는 이 문제로 계속 힘들어할 것이다. 그리고 별반 달라지지 않는 증상 때문에 혼자 고민하다 또다른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닥터 쇼핑(doctor shopping)을 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점도 해결책도 본인으로부터 나온다.

< Do No Harm >을 위해서는 환자 스스로 자신의 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의료진 역시 약이나 시술의 효과만이 아니라 앞에 환자의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이

득보다 해가 적을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 환자의 삶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통계적인 수치 속에 일반화되는 대상이기 이전에 개개인의 고유함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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