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국 지도자의 리더십

제정관 전 국방리더십개발원 원장

제정관 전 국방리더십개발원 원장

제정관(诸廷官 / JAE Jungkwan)

한중협회 리더십 경영 고문
韩中协会领导力经营顾问
Korea-China Association / Leadership Management Consultant

전, 국방리더십개발원 원장
(前)任青瓦台总统府秘书官
(前)任国防领导力开发院院长

저서 : 리더십 포커스(2006, 교보문고)
著书 ‘Leadership Focus(2006)’和 ‘领导力的哲学’ 等撰写多篇著作

[제정관 교수의 중국 지도자의 리더십①] 덩샤오핑

작성자
제정관
작성일
2015-06-27 01:56
조회
45966

중국 최고지도자(1978-97) 덩샤오핑(邓小平, 1904-97)


[caption id="" align="alignnone" width="250"]DengXiaoping.jpg 덩샤오핑(邓小平) (사진=위키백과)[/caption]

노자는 최고의 리더십을 태상(太上)이라 하였다. 실제로 몸소 진두지휘하거나 나타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십의 최고 경지를 뜻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이야 말로 1989년 85세의 나이로 은퇴하고 92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복하게 세상을 떠난 후 작금에 이르기까지, 또 앞으로도 중국의 국가발전 전반적 흐름에 태상적 리더십을 계속 발휘할 위대한 지도자라 할 수 있다.

리더십을 목표달성의 수단(an instrument of goal achievement)이라는 리더십 정의 차원에서 볼 때, 덩은 중국민들을 이끌어 국가적 목표를 분명히 하고 국민적 욕구를 성취시키는 지도자 역할을 다하기 위해 가장 차원 높은 원칙과 안목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중국민을 단합시켜 경제 강국으로 나아가는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단계마다 제반 원칙을 우선순위에 입각하여 잘 적용하였다.

먼저 목표와 방향을 뚜렷이 제시하였다. 3보주(三步走)를 내새워 단계적으로 중국의 현대화를 통해 '풍요로운 세상실현'이라는 최종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원칙과 방향으로 '정치는 공산주의, 경제는 개혁 ․ 개방을 통한 시장경제'임을 분명히 하였다.

다음으로 무엇보다 먼저 국가의 구심점 형성을 통한 단합을 이루어 나갔다.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목숨마저 위태롭게 한 마오쩌둥을 '功7過3'으로 평가하고 동상까지 세워주면서 전대의 혁명정신과 건국 그리고 위대한 공산주의자로 자리매김 함으로써 14억 중국인의 힘을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 마오가 주도한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간의 6천여 만 희생의 논란에 '公7過3'의 논리로 국가적 분열을 큰 차원에서 봉쇄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해방되어서는 마오쩌둥을 잊지 않고 잘살게 되어서는 덩샤오핑에게 감사한다'하지만 이는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을 부정하거나 격하하지 않은 리더십의 위대함 때문이다.

이 위대한 지도자 자신은 각막과 장기를 기증하고 주검은 해부연구용으로 내놓았으며, 화장을 한 뒤 바다에 뿌려 자연으로 돌아갔다.
동상이나 기념관을 세우는 대신 나무를 많이 심으라고 한 그는 물려줄 재산도 남기지 않았다. 중국 자체가 그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덩샤오핑은 진실하고 위대했던 현대사의 거목으로, 중국의 독립과 해방, 혁명과 건설, 개혁개방을 통한 부강, 국민의 행복을 위한 큰 리더십 원칙제시와 실천으로 영원히 빛날 공적을 세웠다.

이러한 덩샤오핑의 리더십을 리더십 특성이라는 틀에서 투영해보면 그의 탁월한 리더십이 더 분명해진다.

리더십 특성에 관한 연구가 20세기 전 기간에 걸쳐 실시되었고 그 결과 지능(intelligence), 자신감(self-confidence), 결단력(determination), 성실성(integrity), 사교성(sociability)이 그 주요 특성으로 정리되었다. 덩샤오핑은 이러한 특성을 누구보다도 잘 갖추고 발휘하였다.

덩샤오핑은 일생동안 숱한 실패와 좌절의 시간 속에서도 선 굵은 인간적 매력과 유머를 잃지 않고 낙관적 긍정적 생활 태도를 유지했다.

이는 리더십 특성에서 먼저 거론되는 자신감, 자존감, 능력에 대한 신뢰인 것이다. 문혁기간중의 하방의 수난이 절망과 좌절이 아닌 장차 국정의 확고한 방향 설정과 실천방안의 구상 기간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자기 할 일에 전력을 다하는 부지런함과 누구에게든 실천한 겸손한 처신이었다. 이는 리더십 특성 중 성실성과 사교성에 해당한다. 이러한 태도가 그를 절박한 상황에서 지켜주었고 결국 위대한 경륜을 펼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특성도 그 기회를 만들고 놓치지 않아야 함은 너무도 중요한데, 결국 덩의 성실함과 겸손이 그를 지켜준 것이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중국발전을 지켜준 것이다.

세 번째로, 이상과 명분에 매달리지 않는 실리중시와 확고한 철학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밀어붙이는 과감한 추진력과 결단력을 들 수 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대처에서 보듯이 민중의 당면한 인권요구와 민주화보다, 확고한 체제강화를 통한 국가기강 확립과 원대한 국가발전을 위한 터전구축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용단으로 대처하였는데, 작금의 중국 국가발전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그의 역사적 안목에 따른 결단의 위대함이다.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천상의 소리'라고 했던 그의 인간적 고뇌를 넘어서는 리더의 결단이다.

마지막로 나타난 그의 리더십 특성은 지성과 지능이다.
지성과 지능은 모든 일의 경중완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덩샤오핑은 중국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실권만은 확고하게 장악하였다. 한편으로는 중국공산당의 관행처럼 이어지던 '원로정치'가 중국미래의 최대 걸림돌임을 인식하고 혁명원로 지도자들 중심으로 중앙고문위원회를 만들어 힘을 뺀 후 자연스럽게 물러나도록 하였다. 아울러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는 일에 연연하지 않았고, 따라서 마오쩌둥처럼 영구집권이나 우상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일할 때에 실권을 장악하는 것과 권좌에 연연, 유지하려는 것과는 별개인 것이다.

1989년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내놓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며 은퇴하였다. 이 은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80년대 이후 2가지 목표를 착실하게 진행시켰다. 개혁 ․ 개방을 차질 없이 이끌어가는 일과, 후계자를 키워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일이였다.

후계자 확립을 위해 호요방과 조자양을 차례로 내세웠지만 미흡하자 물러나게 했고,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자 강경진압한 뒤에 장쩌민을 중국지도자로 확립했다. 이후 후진타오를 거쳐 현재의 탄탄한 시진핑 시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사후 흔들림 없는 개혁 ․ 개방 정책과 차세대 준비, 이는 그 어떤 사람도 흉내 낼 수 없는 덩샤오핑의 차원 높은 철학과 경지를 뒷받침하는 고도의 지성과 지능이 이루어낸 리더십의 백미다.

그는 이제까지 연구된 주요 리더십 특성을 확실하게 갖추고 탁월하게 실천한 인물이므로 명실공이 위대한 세계적 지도자요, 중국을 세계적 강국으로 이끌어갈 태상(太上)적 리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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