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국 지도자의 리더십

제정관 전 국방리더십개발원 원장

제정관 전 국방리더십개발원 원장

제정관(诸廷官 / JAE Jungkwan)

한중협회 리더십 경영 고문
韩中协会领导力经营顾问
Korea-China Association / Leadership Management Consultant

전, 국방리더십개발원 원장
(前)任青瓦台总统府秘书官
(前)任国防领导力开发院院长

저서 : 리더십 포커스(2006, 교보문고)
著书 ‘Leadership Focus(2006)’和 ‘领导力的哲学’ 等撰写多篇著作

[제정관 교수의 중국 지도자의 리더십②] 마오쩌둥

작성자
제정관
작성일
2015-06-27 01:59
조회
49390

마오쩌둥(Mao Zedong/毛泽东/모택동, 1893-1976)


중국 최고지도자(1949-76)


[caption id="" align="alignnone" width="255"] 마오쩌둥( 毛泽东/모택동)(사진=위키백과)[/caption]

 

지도자란 자신과 추종자가 공유하는 목표를 향해 추종자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해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다. 지도자와 추종자, 목표라는 세 가지 요소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통상 이야기하는 결단력, 핵심과 우선사항을 파악하는 능력, 존경심, 모방, 애정 등은 리더십의 필수적 요소는 아니다. 필수적 요소는 추종자이며 추종자들의 목표에 대한 동의이다.

목표는 지도자와 추종자가 존재하기 위한 이유이다. 추종자들은 지도자의 인격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어 주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단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데 그치지 않고 어떤 공동 목표를 공유하도록 이끌어 가야 한다.

히틀러는 많은 사람들에게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그러나 당시 히틀러의 추종자들은 어느 정도 그와 목표를 공유했다. 베르사유조약에 대한 독일인들의 불만을 정당화하고, 사회의 규율을 회복하며, 다른 민족을 희생해서라도 독일민족의 영광을 살리는 것 등이 그들이 공유한 목표였을 것이다.

특별한 동기와 의도를 가진 사람이 추종자들의 동기를 일깨우고 공동의 목표로 이끈다. 특별한 동기와 의도를 가진 사람인 지도자는 쉽게 탄생되지 않는다. 중국의 모택동과 등소평 같은 지도자 말이다.

맹자의 '고자장(告子章)'의 문구를 살펴보자.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신세를 공핍하게 하고, 그 하는 일을 힘들고 어지럽게 하니, 이는 마음을 움직여 참을성을 기르게 하여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중국인들은 맹자의 말씀과 같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해준 모택동과 등소평을 영원한 국가지도자로서 함께 존경하고 우러러보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해방되고서는 모택동을 잊지 않고 잘 살게 되어서는 등소평에게 감사한다."

모택동과 등소평은 온갖 도전을 이겨내며 그들의 추종자들이 바라는 공동의 목표인 위대한 중국을 만든 지도자인 것이다.

모택동은 1950년 김일성이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일으킨 한국전쟁(1950-53)에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팽덕회의 지휘아래 30만 병력을 투입하여 결과적으로 남북통일을 가로막고 분단된 한반도가 되게 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모택동 입장에서는 이 전쟁을 통해 국민당군을 비롯한 반공산세력을 전선에 투입하여 대거 소모시켰고, 소련으로부터 막대한 물자와 군수지원, 그리고 군사기술을 얻어내어 초기 정권기반을 다졌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모택동은 현대 중국건국의 국부로서 청나라의 계승자임을 내세우며 역사상 가장 큰 청나라 영토(998만 평방km)와 제반 권리를 승계함으로써 지금의 중국 국경으로 확정하면서 현대 중국의 기틀을 다진 것이다.

이어 그가 살려준 등소평이 개혁 개방을 통한 부강한 중국을 만들어 국민 다수의 행복을 위해 영원히 빛날 공적을 남겼다.

이들은 지도자로서 그들과 그 추종자인 국민들이 바라는 공동목표를 실현했기 때문에 추앙을 받는 것이다.
특히 등소평은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목숨마저 빼앗을 수 있었던 모택동의 동상까지 세워 결코 그의 혁명정신과 공산주의를 무시하지 않았고, 중국을 건국한 국부로 만들었다.

그 결과 현재 14억 중국인이 하나로 뭉쳐 G2로 범세계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모택동의 위대한 역사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가 주도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면 모의 중국 건국 국부로서의 위상은 존재하기 어렵다.

대약진운동(1958-60)은 모택동의 주도아래 노동력집중화 산업의 추진을 통한 경제성장운동이었다. 그러나 농촌의 과도한 노동력 차출로 인한 농업 생산력의 급감과 도시인구의 급격한 증가, 자연 재해, 소련과의 분쟁으로 인한 경제원조 중단 등으로 농업과 경공업의 심각한 타격과 더불어 역점을 둔 중화학 공업목표 조차 크게 미달되었다.

결과는 중국인 3천만 명 이상이 굶어죽거나 처형되는 지경으로 치달았고, 모택동은 자진하여 국가주석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정치인생 5번째 위기이며, 1966년 문화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8년 동안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문화대혁명(1966-76)은 구시대적 문화유산을 청산하고 부르조아를 척살하는 혁명으로 홍위병들이 앞장섰다. 홍위병은 모택동을 지지하고 투쟁했던 학생청년단으로 천만명이 넘었으며, 각 지방의 지주, 교사, 지도층, 지식인을 박해하고 처형하였다.

또한 모택동 사상을 절대시하면서 공산당 내 좌파들이 전면에 나서 계급투쟁, 평등, 배외주의 등을 내세우면서, 경제발전, 교육, 실용외교 등을 내세우던 실용주의 우파에 대한 전면 공세를 벌이면서 전개되었다.

임표와 4인방인 장청, 왕홍문, 요원문, 장춘교는 홍위병을 내세워 유소기와 등소평을 주자파이자 반혁명분자로 몰아 축출하였고, 그 결과 1969년 모택동의 절대적 권위가 재확립되었다. 문화대혁명은 모택동이 유소기, 등소평 같은 반대세력을 숙청하거나 학살하기 위해 주도한 공산당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이었으며, 모의 정책실패에 대한 불신을 타개하고 자신의 영구집권을 추구한 20세기 분서갱유 (焚書坑儒)라 할 수 있다.

광란의 물결로 3천만 명이 죽는 등 1억 명이 넘는 중국인이 피해를 입었으며, 무려 5천억 위안에 달하는 손실을 가져왔다. 81년 6월 중국공산당 전원희의에서 문혁은 건국 이래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 준 모택동의 극좌적 오류이며 그의 책임이라고 규정하였다.

탁월한 혁명가로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민심을 결집해 공산당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의 멋진 모습이 큰 타격을 입었다. 그 결과 중국인의 공적이 될 뻔 했다가 '건국의 아버지(國父)'로 되살아 난 것은 다른 정적들은 가차 없이 제거했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등소평을 살려준 덕분이다.

결국 상대의 그릇을 알고 대우한 모택동, 큰 결함과 잘못을 덮어준 등소평의 위대함이 21세기에 이르러 중국의 맹렬한 발전과 인류사적 성공을 이루어내는 근원이 되었다.

사실 모택동보다 장단점이 분명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일생을 일관한 겸손함과 청렴, 자식에의 세습이나 축재를 저지르지 않음,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현실에 맞서 살아남은 생존능력과 전략, 엄청난 독서량과 박식함, 목표달성을 위한 집요함 등은 그의 강점이다.

특히 중국혁명의 주체를 농민으로 삼고 농촌의 민심장악과 게릴라전의 전개 등을 통해 중국의 현실에 맞게 접근하였고, 대다수 농민과의 공동목표를 추구하여 추종자로 만들었다.

모가 쓴 신지구론, 신단계론, 신민주주의론 등과 같은 저서들은 정연한 논리로 중국공산국가의 수립과 안정에 크게 이바지했다. 특히 중국식 사회주의이자 Maoism(모택동주의)의 정립을 통해 인구의 90%인 농민이 혁명의 주력군이 되어 도시를 포위해야 한다는 논리로 지도자로서 추종자인 농민들과의 공동목표를 일관성 있게 공유하였다.

장개석에 의한 지속적인 소탕작전을 견디었고 특히 대장정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인고의 세월을 참아냈다. 장정에 성공한 공산당군은 최정예 병력이 되어 대규모 공산당 세력을 회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모택동이 장개석과 국민당군에 쫓겨 다녀야 했던 기간은 1927년부터 1949년까지 무려 22년이였다. 특히 그의 지도아래 살아남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40km를 행군하여 18개의 산맥과 22개의 강을 건너 1만 2500km에 이르는 대장정(1934-36)을 감행, 10만 명중 8천명이 살아서 섬서성 연안에 도착하는 신화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중국의 많은 청년들이 공산당에 참여케 하는 대역전극의 시발이 됐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절대권력 추구, 노욕으로 가득 찼던 권력욕, 잦은 폭력과 파괴, 인명경시와 잔혹함, 인민복을 입은 겉과 달랐던 방탕한 사생활, 공자와 유학을 비롯한 중국의 전통과 문화부정, 사상적 다양성의 불인정, 동지에 대한 의심과 숙청, 정책의 잇따른 실패에도 무모한 아집과 관철, 주변국과 이민족에 대한 폐쇄성, 중국만의 세상을 지향하는 맹목적 애국주의와 패권적 사고와 형태 등은 단점이었다.

특히 영구집권의 추구와 개인의 우상화를 벌인 문화대혁명은 그의 치명적 잘못이자 현대 중국의 상처로 지적되고 있다. 또 절대 권력의 아성을 쌓고는 후계를 제대로 안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중국인들은 모택동을 두고 여러 공과가 있지만 중국의 독립과 건국을 이끌며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해준 영원한 국가지도자로서 극도로 존중하고 있다.

중국을 '인민의 나라'로 만든 것은 중국의 아버지 모택동이며, 이 기반위에 중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든 지도자는 등소평인 것이다. 14억 인구의 확고한 구심점이 되어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는 바로 리더십의 가장 기본 원리인 지도자와 추종자가 바라는 크고 강한 나라,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공동목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달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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