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컨설팅 김재호 대표


김재호(金再虎 / Jay
 Kim)

국제 금융 컨설턴트

자격증 :
– 미국 증권업 (Series 7) 및 투자자문업 (Series 66)
– 미국 은퇴설계 카운슬러 (Chartered Retirement Planning Counselor)
– 보험영업 (뉴저지 주)

저서 :
– 외환시장의 실무 (1994. 증권서적)
– 금요일 모닝커피 (2013. 퍼플)

 

 

영국의 자존심 - 김재호의 금융 이야기

작성자
김재호
작성일
2015-09-21 15:02
조회
22551
지난 9월 9일은 영국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현재 왕위에 올라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 2세 (Queen Elizabeth II)가 영국의 최장 재위 군주가 되었습니다. 여왕의 재위 기간은 63년 7개월 3일(2만3226일)이 되었습니다. 이전 영국에서의 최장 재위 군주였던 현재 여왕의 고조모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년)의 재위 기간 63년 7개월 2일을 넘어선 것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엘리자베스 여왕 2세보다 재위 기간이 긴 군주는 1946년 즉위해 69년째 왕위를 지키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뿐이라고 합니다. (관련기사: http://donga.com/최장재위_영여왕http://www.wsj.com/britains-longest-serving-monarch)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원칙적으로 국왕(國王)은 국가의 원수이며 나라의 상징적인 군주(君主)입니다. 실질적으로는 모든 정치적인 실권은 총리에게 주어집니다. 형식상 총리의 임명은 국왕이 합니다. 그리고 모든 정치적 결정은 의회에서 이루어집니다. 많은 부분이 불문률(不文律, unwritten law)로 이루어져 있는 영국의 헌법에 의하면 의회가 표결로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 최후의 의사결정을 국왕이 할 수 있다고는 합니다만, 아직까지는 그러한 선례가 없었다고 합니다. 정치지도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왕에게 마지막 결정권을 위임하는 것은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영국 신사라는 말을 들으면 우선 외모부터 깔끔하고, 약속을 잘 지키고, 책임을 질 줄 알며, 정의에 앞 설 것 같은 인상을 가지게 됩니다.그리고 영국인이라는 자존심이 강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지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영국의 국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한 때는 영국의 자존심은 자신이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의 선친께서 제게 해주셨던 영국 사람에 얽힌 일화 한 가지를 옮겨 보겠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일찍이 1920년대에 중국의 상해에 있는 영국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다가 1932년 일본헌병에게 붙잡혀, 그 전 해에 있었던 윤봉길 의사 의거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었고, 10년간의 수감 생활 후에는 불령선인(不逞鮮人: 불순한 조선 사람)으로 분류 되어 예비구금(豫備拘禁: 죄를 지을 것이 분명하므로 죄를 짓기 전에 미리 감옥에 가두어 놓는 것)으로 다시 투옥되셨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풀려 나오셨습니다.

그 후 무역업으로 사업을 일으키셨고 가정도 이루셨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1950년대 중후반에 사업차 홍콩에 자주 들리셨습니다. 그 곳  전화번호부에서 저희 선친의 고등학교 시절 수학 선생님 성함을 우연히 발견하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전화상으로 선친의 학교 은사임을 확인하고 선친께서 묵고 계신 호텔로 나오시라고 부탁 드려 얼굴을 한 번 뵙기로 하였습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서로 알아 보지 못 할 것에 대비하여 선생님은 흰색 양복에 검은색 지팡이를 짚고 나오시기로 하셨고, 저희 선친께서는 초록색 나비 넥타이를 매고 나가시기로 하셨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약속 장소에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먼저 나가서 기다리셨습니다. 정확히 약속 시간 5분전에 선생님은 흰색 양복을 입고 검은색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셨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반갑게 선생님을 맞으시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How have you been sir? It has been over two and a half decade since we last time met.”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마지막으로 뵌 지가 25년이 넘었습니다.)

그러자 그 수학 선생님께서는 정색을 하시면서 저의 선친을 꾸짖으셨습니다;

“Shuk, what happened to your English? It’s is not appropriate to speak like that.’

(얘, 네 영어가 어떻게 된 것이냐?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란다.) - *주: 제 선친의 영문 성함은 Shuk Kim 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제자인 제 선친의 이름, first name을 불러 주셨습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당시에 미국 사람들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시다 보니 미국식 영어에 익숙해지셨던 것입니다. 영국 사람인 수학 선생님께서는 비록 당신의 담당과목은 수학이지만 제자가 하는 미국식 영어가 못 마땅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선친을 꾸짖으시며 영어를 망쳤다고 야단을 치신 것이었습니다.

영어의 decade는 10년이고, two and a half decade는 2와 1/2 decade, 즉 25년입니다. 그런데 제 선친의 영어 표현 가운데 ‘two and a half decade’ 와 ‘since we last time met’ 이 선생님께서 들으시기에 언짢으셨던 것입니다. 특히나 last를 ‘라스트’라고 발음하지 않고 ‘래스트’라고 발음한 것을 못 마땅해 하셨습니다.

영국식으로 이야기하면;

“How have you been sir? It has been over two and half a decadesince we met last time.” 이라고 하여야 하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흔히 ‘a half ~’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고전적인 영국 영어로는 ‘half a ~’라고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식 구어체로는 ‘since we last time met’이라는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으나 고전적인 영국 영어로는 ‘since we met last time’이라고 하여야 옳다는 것입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영국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으셨으니 학교 다니시던 시절에는 당연히 고전적인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 미국 사람들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셨고 미국식 영어에 익숙해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 선친의 영어가 미국식으로 변한 것을 영국사람인 수학선생님께서 야단을 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에 미국식 영어를 가르칩니다. 억양과 액센트가 부드러운 캘리포니아 영어에 가까운 미국 영어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영어는 미국식 영어입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미드’도 미국TV 드라마입니다. 거기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미국식 영어입니다.

그런데 극단적인 표현을 빌면 영국식 영어는 표준어이고 미국식 영어는 하나의 방언- 사투리입니다. 제가 경험하였던 사례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해외 유가증권 시장에서의 채권 발행이 붐을 일으키기 시작할 때의 일입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지극히 소규모에 불과합니다만 그 당시에는 미화 2천 5백만 달러, 혹은 5천만 달러 규모의 해외 채권을 많이 발행하였습니다. 해외 채권을 발행하게 되면 매번 투자자 설명회- IR (Investor Relations) 로드쇼(roadshow)를 시행하였습니다. 로드쇼에서는 발행사에 대한 설명과 사업성, 재정상태 등에 대한 설명과 발행 채권으로 조성되는 자금의 용도, 상환 재원 마련 등에 대한 설명을 깃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설명이 영어로 진행됩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 발행을 막 시작하던 아주 초창기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목소리가 좋고 발음도 정확한 방송사 아나운서 출신의 미국 사람을 고용하였습니다. 로드쇼 진행을 위한 동영상을 제작하고 나레이션을 그 미국 사람이 녹음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와 영국으로 로드쇼를 떠났습니다. 첫 번째 나라에서부터 로드쇼에 참석한 투자자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였습니다.영국에서는 심지어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일도 발생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유럽과 영국 사람들에게 공식적인 스피치를 할 때에는 영국식 영어- 표준어를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우리나라 기업은 사투리인 미국식 영어로 로드쇼를 진행하였던 것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이 무방하나 공식적인 방송에서는 표준어를 사용합니다. 회사 설명을 하면서 그 회사의 CEO가 나와서 서툰 영어로 설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투자자들은 이를 개의치 않고 경청합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나레이션만큼은 전문 나레이터가 정확한 영국식 영어- 표준어를 사용하여야 합니다.

영어는 영어로 English 라고 합니다. 잉글랜드 지방에서 사용하는 표준어가 English 입니다. 아직까지도 영국사람들에게는 아메리칸English란 아메리카 지방에서 사용하는 방언- 사투리라고 받아들여지는 듯 합니다. 아마도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영국의 자존심 가운데 한 편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9월의 반이 훌쩍 지나간 금요일 아침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면서 모닝커피 한 잔을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저도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표준어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자존심과 금융의 종주국이라는 자존심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영국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